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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이야기

부활의 명곡 '사랑할수록'의 가수 김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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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부활의 곡들이 듣고 싶어졌습니다. 자연스레 김태원에 관한 얘기들도 찾아보다 보니

'사랑할수록'을 부른 김재기씨에 대한 글이 나왔고

그러다보니...어렴풋이 기억이 나더군요.....원곡을 부른가수가 녹음도중 죽었고 무대에 나와있는 사람은 동생이라고..그당시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역시 그곡에 완전히 빠져 있었더랬죠..

 

궁금해서 찾아봤습니다..

 

 

우리나라 록음악의 브랜드 부활, 그리고...

 

최고의 기타리스트 김태원이 이끄는, 1985년 결성된 부활 (Born Again) 은 말 그대로 우리나라 록음악을 대표하는 브랜드 네임이다. 부활에서 재직하는, 그리고 재직했던 아티스트들은 죄다 우리나라에서 이름만 들었다 하면 딱 알 수 있는 최고의 록가수들이고, 부활은 이렇게 록의 불모지 우리나라에서 ‘한국형 록’ 을 무던히 개발하며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부활을 향해 “발라드 그룹일 뿐” 이라고 평가절하했던 개그맨 및 팝 칼럼니스트 김구라 역시 이후의 인터뷰에서 “부활을 그렇게 비하한 것은 정말 잘못한 것이다” 라고 뉘우쳤으니, 부활은 이런 독설가마저 꺾어버리는 힘을 지녔다. (물론 김구라가 김태원과 친분이 있는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부활의 초대 보컬이 김종서라는 사실은 이미 너무나도 유명하고, 이후에 들어온 2기 보컬 이승철은 부활을 우리나라 최고의 록밴드로 격상시켜준 슈퍼스타였다. 김종서는 비록 부활과 뚜렷한 음악 작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김종서 - 김태원 조합이라는 환상적 궁합은 결국 수면 위로 떠오르진 않았지만, 일각에서는 부활이 좀 더 대중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승철의 투입과 이승철의 뛰어난 가창력 (팝과 록을 넘나드는) 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찌되었건 부활의 역대 보컬을 따질 때, 김종서와 이승철 두 사람을 각각 1기와 2기로 리스트에 올리는 것 자체가, 타 록그룹들의 부러움과 시기를 동시에 살만 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힘이다.

 

 

전체적으로 부활은 프론트맨 김태원이 영감을 받았다는 딥 퍼플, 레인보우 등의 영국 하드 록의 형태를 띠었다. 여기에 헤비메탈의 그 강렬한 기타 리프까지 흡수시키며, 1980년대 동시대 록그룹들 중에서 가장 스탠더드에 입각한 밴드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여기에다가 부활의 2집인 Remember에서는 국내에서 시도하기 어려웠던 프로그레시브 록을 전격 도입, 아직까지도 부활 2집은 우리나라 최고의 록 명반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능력자 이승철의 투입은 부활의 기본 베이스에다가 ‘대중성’ 을 더하는 것으로서, 김태원의 ‘록 이론’ 에서 이승철의 ‘보컬 매개체’ 로 이동하는 상응성을 보였다.

 

 

그래서 아무래도 부활 하면 딱 이승철이 떠오르지만, 이승철 이후 3기로 들어온 보컬 김재기에 대해 이 글에서 한번 조명해볼까 한다. 김재기라고 하니까 일본 J-리그 빗셀 고베 소속의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 미드필더 김남일 선수의 부친 이름 같기도 하고, 기업인 김재기를 말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록 보컬 김재기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고,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그렇지만 부활의 명곡 중 하나인 <사랑할수록> 을 불렀던 그 비운의 록커라 한다면, 대개의 사람들은 어렴풋한 기억을 떠올린다. 바로 그 김재기에 대한 이야기다.

 

 

이승철과의 이별 후 힘들었던 부활의 김태원

 

앞서 언급했듯이 부활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기는 역시 이승철 - 김태원 조합의 때였다. 김태원이 새로운 부활 보컬을 모집했을 때, 일면식이 있던 미성의 소유자 이승철을 단박에 뽑았다는 사실은 이미 유명한 일화다. 김태원의 취향대로라면 조금 박력있는 보컬을 원했을텐데, 그렇지만 팔색조 같은 색채를 지닌 이승철이 곧 부활에 제격이었다. 그리하여 김태원은 이승철이라는 희대의 보컬을 소유하면서, 우리나라 정서 특유의 한 (恨) 스러움을 록음악에 입히고자 하였다. 이것은 정말 대성공이었다. 이미 그들의 데뷔작 Rock Will Never Die (1986) 에서 그 진가가 드러났다.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부활의 1집에서 이미 나올 히트곡은 다 나왔다는 것을.

 

 

이승철이 솔로로 독립해서 또다시 히트를 시켰던 <희야>, 그리고 후반부의 클라이막스에서 "사랑해" 라는 반복 가사로 유명한 슬로우 록 넘버원 <비와 당신의 이야기>, 그리고 <인형의 부활> 등이 내리 히트를 친 것이었다. 여기에 탄력을 받은 부활은 1년 후 1987년 2집 Remember를 통해 또다시 록계의 정상에 올랐다. 여기서부터 이승철 - 김태원 조합은 실험적으로 도전했던 프로그레시브 록이 성공을 이루자, 그야말로 이룰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팬들의 엄청난 환호, 그리고 평단에서의 극찬은 데뷔 2년차 밴드 부활을 슈퍼스타의 자리에 등극시켰다. 이 시기가 바로 부활의 최고의 순간이었으며, 다시 영광을 누리고자 했던 2002년 이승철 - 김태원 재결합의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나 이승철은 부활을 탈퇴하고 솔로로 나서게 되었고, 김태원은 팀 내의 블루칩 이승철의 탈퇴 때문에 부활이 무너지는 것을 바라만 봐야 했다. 이승철은 1989년 1집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에서 소위 대박을 터트렸고, 김태원은 다른 록 아티스트와 함께 음악 작업을 했지만 히트에서 무참히 실패했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김태원이 팀 이름처럼 '부활' 이 힘들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김태원은 음악적으로 상당히 독단적이었고, 그것은 마치 리치 블랙모어 (Ritchie Blackmore) 와 비견될 정도로 정도가 강했었다. 그래서 이승철과의 트러블이 있었던 것이고, 결국 김태원의 못 말리는 고집이 부활의 붕괴를 초래한 것이었다.

 

 

<무정 블루스> 에서 단박에 알아봤던 보컬, 김재기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보컬 이승철, 베이스 정준교, 키보드 서영진, 그리고 드럼 김성태가 김태원과 함께 우리나라 록의 신기원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승철의 탈퇴 이후 각각 멤버들은 뿔뿔이 헤어지며 남는 것은 김태원 뿐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김태원은 따로 팀을 만들어서 새로운 도전을 해볼까 했지만, 그것마저도 녹록치 않았다. 그리하여 김태원에게 있어서 록계의 재기란 참 힘들어 보이는 듯 했다.

 

 

근데 마침 희한하게도 이름부터가 '다시 시작' 이라는 뉘앙스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 김태원 앞에 등장하였다. 그 이름도 바로 김재기였다. 김재기의 생전 사진이 정확히 남아있는 것이 흔치 않아서 어떻게 표현을 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김재기의 친동생 김재희 (역시 그도 부활의 보컬이었다) 의 말끔한 외모에서 추론할 수 있는 것은, 그 역시 빛나는 외모의 소유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김재기는 미소년 스타일이라서, 고집 있고 개성있게 생긴 김태원과 함께 특이한 조화를 이루며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다시 일어설 수 없다고 판단하며 자책하던 김태원은, 애절한 멜로디와 떠나간 님을 향해 거침없이 속사포를 던지는 노래 <무정 블루스> 를 부르는 김재기를 보고 "바로 이거다" 하며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접근했다고 한다. 바로, 부활을 다시 일으키자고 말이다. 김재기는 그렇게 해서 왕년의 록 스타 김태원과 손을 잡고 부활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했던 소속사 패밀리 프로덕션에 들어갔고, 그렇게 해서 김태원 - 김재기 조합으로만 이뤄진 부활 4기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역대 보컬로 치자면 김재기는 부활의 3기 보컬이었다.

 

 

마치 이런 형태는 1986년 오로지 토니 아이오미 (Tony Iommi) 본인만이 팀을 혼자 이끌며 블랙 새버스를 유지시켰던 그 어려운 때를 생각나게 하고, 역시나 프론트맨 토니 아이오미가 그 당시 앨범 제목을 Seventh Star (Feat. 아이오미) 로 정한 것처럼, 부활의 김태원은 사실상 네임 밸류가 가장 높은 자신을 앞세워서 부활을 이끌고 있었다. 토니 아이오미도 역시 1986년 당시 거의 잘 알려지지 않은 새 멤버들을 뒤로 한 채,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블랙 새버스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김태원도 같은 심정이었을 듯. 그러나 김태원이 이렇게 굳이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새내기 보컬 김재기의 실력이 워낙 뛰어나서, 결국 록 역사에 남는 것은 김태원 혼자가 아니라. 김재기 - 김태원 조합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 록의 최대 비극을 껴안고 말이다.

 

<사랑할수록> 녹음 직후 세상을 떠나가버린 김재기

 

김재기, 김태원 이렇게 듀오 형태를 띤 부활 4기는 김재기가 이전에 있던 그룹 작은 하늘 출신의 기타리스트 이근형 등 록계의 인물들을 끌어모으며 듀오 밴드의 단점을 차차 막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1993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부활의 3집 <기억상실> 은 타이틀곡 <사랑할수록> 을 필두로 해서 대중들의 입에서 오르락내리락 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앨범에서 <사랑할수록> 외에 <소나기>, <별> 등의 노래가 공전의 히트를 치며 베스트 셀러를 기록했다. 그리고 <사랑할수록> 은 가요 프로그램 1위를 기록하며, 오래간만에 록밴드가 정상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었고, 부활은 말 그대로 ‘부활’ 했다.

 

 

하지만 이렇게 3집 <기억상실> 이 공전의 히트를 친 가장 큰 이유, 그리고 이 사건이 왜 비극적인 결말로 끝났는지 모두 알 것이다. 정말, 정말 안타깝게도 보컬 김재기는 3집의 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미 3집이 발매되었을 때, 그는 이 세상에 없었다. 딱 <사랑할수록> 까지 녹음해놓고, 불의의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은 앞서 말했듯 우리나라 록음악의 최대 비극으로 불리우며, 겨우 일어서나 싶었던 부활에게 또다시 시련이 닥쳐왔다. 많은 록음악 팬들, 그리고 부활의 추종자들은 이런 김재기의 비극적 사건에 대해 많이 안타까워한다.

 

 

일각에서는 “만약 김재기가 계속 살아있었다면, 이승철과 함께 보컬계 양강체제를 이루었을 듯” 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결코 김재기가 요절을 해서 위로의 차원에서 말한게 아니라, 정말 사실이었다. 이승철처럼 고음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거나, 팔색조 같은 형태는 아니었지만, 김재기는 말 그대로 우리나라 록음악에 정확히 들어맞는 구수한, 그리고 우울한 보컬 음색을 가지고 있었다. 부활이 3집을 통해 진짜배기 ‘우리나라 정서에 제대로 들어맞는’ 일명 ‘록 발라드’ 라고 잘못 알려지는 슬로우 록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외세의 음악적 영향을 받지 않은 신토불이 보컬 김재기의 그 걸걸함에서 8할을 얻었던 것이다. 김재기가 살아있었다면, 이승철과 함께 전현직 부활 보컬들의 대결이었을텐데, 참 아쉽다.

 

 

당장 가요 프로그램 및 앨범 활동이 필요했던 김태원은, 어렵게 어렵게 김재기의 친동생 김재희를 임시방편으로 사용하며 누수를 막았다. 또 여기에 대해 기가 막히는 사례가 하나 있다. 김재기 사망 후, 김재희는 친형에게서 “너가 대신해서 부활의 노래를 불러다오” 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말 그대로 시공간과 이승, 저승을 초월하는 운명적인 계승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노래 실력 꽤나 있던 김재희는 김태원의 품으로 돌아갔고, 게다가 김재희 역시 친형과 많이 닮았기에 그 누구도 김재희가 김재기의 동생이었을 줄 몰랐다고 한다. 동생 김재희는 그렇게 꽃가루가 휘날리는 ‘가요 프로그램 1위 무대’ 에서 눈물을 머금고 형을 생각하며 <사랑할수록> 을 불렀다.

 

 

하늘이 시기한 록가수 김재기를 추모하며

 

그렇게 부활의 4기, 그리고 김재기의 생전 마지막 작품 <기억상실> 은 우리나라 록 명반의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후 부활이 평범한 행보를 걷다가 다시 부활 전성 시절인 이승철 - 김태원 조합이 2002년 재결합하여 <새벽> 이라는 걸작을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대중은 또다시 이승철 - 김태원 조합에 대해 철저히 관심을 쏟게 되었다. 김태원 역시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얼굴을 내밀며 추억의 이야기를 꺼내는데, 죄다 이승철과의 에피소드다. 더해서 배우로도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김종서와의 재밌는 부활 초기 에피소드도 꺼내며 입담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김재기에 대한 이야기는 더이상 없다. 너무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나서 그런지는 몰라도 말이다. 정말 비극적이다. 김재기는 결국 3집 작업을 모두 마치지 못했고, 후반부 트랙 녹음이나 전체적 총괄 보컬 파트는 결국 친동생 김재희가 마쳤다. 이보다 더 비극적인 우리나라 록 역사가 있을까 싶다. 그런지 몰라도 김태원 역시 이런 포인트에 대해서 함구무언하고 있으며, 그러면서 점점 김재기 시절의 부활 이야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듯한 양상이다.

 

 

거기다가 최근 친동생 김재희의 그간 살아왔던 이야기 역시 슬프다. 부활 보컬로서 최정상의 인기를 누린 뒤, 독립하여 음악 작업을 계속 했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그래서 2000년대를 전후로 해서 당구장, 각종 사업 등을 전전했지만 역시 그마저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자기 스스로도 "폐인이 되어 골방에 있었다" 라고 말할 정도로, 김재희는 부활 활동 후 거의 록계에서 사라지는 분위기였다. 그래도 최근 CCM 가수로 돌아왔고, 다시 친분 있는 록 아티스트들과 함께 조우하며 재기를 꿈꾼다 하니, 그의 추후 소식 역시 기대되는 바다.

 

 

김재기는 부활이라는 그룹에서 3집 <기억상실> 을 통해 정확히 8곡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김태원은 그가 <무정 블루스> 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바로 합격 통보를 내리며 부활과 손 잡기를 권유했고, 그것은 곧 부활이 진정 원하고자 했던 '우리나라 정서에 맞는 록음악' 의 지름길이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우리나라 역대 록 보컬 중에서 김현식 이후로 이렇게 우리나라 정서에 잘 들어맞는 사람은 또 없었다. 샤우팅 창법, 그로울링, 하드코어 스타일 등 죄다 외국 음악에서 차용한 음색이 아니라, 그냥 소주 한잔과 안주가 떠오르는 걸걸한 한국식이다. 그런 흔치않은 보컬을, 하늘이 시기했나보다. 하늘이 시기했던 비운의 록가수, 김재기를 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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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락락이란 드라마를 안봤는데 함 찾아서 봐야겠습니다..

아..드라마상에선 작곡히스테리때문에 김태원의 부인이 떠난걸로 나오나보네요...

사실은....마음이 아픈 김태원의 두번째 아이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시선에 상처입어서

가있는거라네요...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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